‘2024 파이낸셜투데이 인사이트 포럼’ 좌장
‘출산해도 되겠다’는 분위기 만드는 게 중요

0.72명.

지난해 대한민국의 연간 합계출산율이다. 2021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합계출산율이 1명에 못미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전 세계적으로 봐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상 최저’ 수준에 치달았으나, 올해는 0.7명대조차 무너지고 0.6명대에 이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작년 11월 발간한 ‘인구위기 대응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지금의 저출생·고령화 현상이 반전되지 않을 시 2040년에 총인구가 5000만명 아래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된다. 합계출산율 저점을 0.7명으로 계산해서 이 같은 전망이 나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합계출산율 감소세에 따라 실제 인구는 더욱 빠르게 줄어들 가능성이 다분하다.

 

김정석 한국인구학회장(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은 ‘국가가 위기니 출산을 많이 해야 된다’라고 몰아붙이는 작금의 ‘사회적 분위기’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경제성장’이라는 목적을 위해 국민을 수단으로 바라봤던 과거 가족 계획(산아제한 정책) 형태를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금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출산은 굉장히 사적인 삶의 영역이잖아요. 그리고 굉장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에요. 사실 그 누구도 ‘출산 좀 하십시오. 국가가 위기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순 없는 거예요. 출산을 안하겠다는 분까지 굳이 붙잡아서 출산하라고 한다? 그건 전체라는 이름으로 개인 삶의 양식에 침입하는, 굉장히 폭력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 학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대신 그는 ‘출산을 해도 되겠다’, ‘아이를 낳아도 큰 걱정이 없겠다’, ‘잘 기를 수 있겠다’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위한 지원 정책을 출산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아이들이 충분한 주거공간에서 교육을 받고 독립하는 것까지의 전 양육 과정에 대한 고르고 충분한 지원이 제공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학회장은 오는 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인구·미래·공존’을 주제로 열릴 ‘2024 파이낸셜투데이 인사이트 포럼(FIF 2024)’의 좌담에서 좌장을 맡을 예정이다. 이에 앞선 13일 동국대학교 인구와사회협동연구소에서 김 학회장을 만나 대한민국 인구문제의 현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하 김정석 학회장과의 일문일답.

- 정말 해묵은 문제입니다. 그렇다 보니 사회적으로 많이 무뎌진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가 어떻게 전개돼왔는지, 또 현황은 어느 정도인가요.

크게 두 단계를 거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0년엔 합계출산율이 4.5명 수준이었어요. 그런데 당시 정부에서 출산율을 감소시키기 위한 가족 계획을 실시하게 됩니다. 3200만명 수준이었는데 그조차도 많다고 생각했던 거에요.

효과를 본 건 80년대부터입니다. 저희가 말하는 대체출산율(인구를 현상 유지하기 위한 자녀수. 일반적으로 2.1명을 말한다)까지 떨어지게 되죠. ‘두 명도 많다, 한 명만 잘 키우자’라고 할 때였습니다. 삶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높아지면서 ‘잘 살아보자’와 같은 마음이 든 겁니다. 이후 출산율은 정부의 출산 계획과 관계없이 자율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저출산의 늪’이라고 부르는 1.3명을 거쳐 지금 0.7명, 그리고 0.6명까지 운운하고 있는 상황이 된 겁니다.

0.7명 수준의 출산율은 인구 역사상 유례가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옛날에 전쟁이나 큰 기근 혹은 질병을 두고 이런 경험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자연재해 없이 사회적 결정에 의해 이 정도로 낮아진 것은 아마 대한민국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기에 해외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거고요.

- 오래전부터 위기의식을 느껴왔고 나름대로의 대책들도 강구해왔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한건 2000년대 초반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출산이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도 제정하고 노력과 관심을 두기 시작하죠. 그때 당시만 해도 이렇게까지 떨어질 거라는 생각을 못 했을 겁니다. 일시적인 현상일 뿐, 곧 복구가 되리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이죠.

길게 보면 정책 차원에서 안이하게 대처하지 않았는가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기본법도 만들고 위원회도 만들었습니다만, 그것이 실질적인 힘과 실천적인 전략을 가지고 접근하진 못했다는 평가를 많이 받습니다. 힘을 발휘하고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선 조직력과 예산력이 있어야 하는데, 위원회가 ‘컨트롤 타워’가 되기엔 그 수준이 부족했던 것이죠.

제시됐던 사회·정책적 방안들도 급하게 만들어져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효과를 단기간에 내려는 조급함이 많았고, 저출산의 기저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부족했습니다.

대한민국의 인구상황판. 사진=국가통계포털(KOSIS) 캡처
대한민국의 인구상황판. 사진=국가통계포털(KOSIS) 캡처

좀 더 심화해서 보자면 한국의 인구 정책이라는 것이 국민을 ‘목적’으로 봐야 되는데, 국민을 ‘수단’으로 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70년대 가족 계획을 보면 ‘국민들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서 인구 수를 줄여야 된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결국 경제성장은 목적이 되고, 출산 인구는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게 옛날식 사고인데 그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인구 정책을 보면 젊은 분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많이 보내죠. ‘국가가 위기니 여러분들이 출산을 많이 하셔야 됩니다.’ 그런데 젊은 분들은 아직 결혼할 준비도, 출산할 준비도 안 돼있고 너무 부담스러운 상황인데 자꾸 분위기를 그렇게 만듭니다.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완화하고 여러 옵션을 주면 모르겠는데, 왠지 그쪽으로 계속 몰아붙이는 거예요. 이게 국가가 해야 될 일인가? 고민할 필요가 있죠.

조금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출산은 굉장히 사적인 삶의 영역이잖아요. 그리고 굉장한 책임이 따르는 일이에요. 사실 그 누구도 ‘출산 좀 하십시오. 국가가 위기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순 없는 겁니다. 출산을 안 하시겠다는 분까지 굳이 붙잡아서 출산하라고 한다? 그건 전체라는 이름으로 개인 삶의 양식에 침입하는 굉장히 폭력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씀드리면 ‘지금의 저출산 문제를 그냥 넘어가자는 말이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냐’ 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도 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굉장히 심각한 사회적 도전이라고 봅니다. 사회적 여건이 바뀌고 젊은 분들의 마음이 돌아서서 더 많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기를 원합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출산을 해도 되겠다’, ‘아이를 낳아도 큰 걱정이 없겠다’, ‘잘 기를 수 있겠다’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자연스럽게 출산하실 분들은 출산하고, 출산을 고민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보니 출산을 해도 크게 어려운 게 없겠다’와 같은 마음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관련 예산을 다시 재구조화해서 정말 출산과 양육 쪽에 집중적으로 투입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 지금 보면 출산을 하는 앞 단계에 너무 몰입돼있는데, 한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전 과정에 걸친 꾸준하고 지속적인 도움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고 몇 년 동안만 힘든 게 아니거든요.

- 지원 말씀하셨는데 최근 기업들의 출산 및 양육 관련 사내 복지도 화제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업들의 행보가 저출산 문제 해소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까요.

저는 기업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업 입장에서 인구 감소란 소비자와 생산자가 동시에 줄어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도 인구 규모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근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출산과 관련해서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여성분들의 일과 가정 양립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게 되려면 일터에서 양육을 지원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와야 돼요. 남녀 공동육아 가능하게 해주고, 경력단절 등 여성들의 불이익을 완화하고 없애주는 방향으로 만드는 것이 저출산 극복에 굉장히 큰 효과를 가져다줄 겁니다.

- 한 보고서에선 수도권에 지나치게 치중된 인구밀도를 저출산의 요인으로 꼽기도 했습니다. 수도권 밀집 현상 속 경쟁 심화가 청년층의 출산을 늦췄다는 진단인데요. 어떻게 보십니까.

당연히 그렇다고 봅니다. 사람을 포함한 유기체들이 갖고 있는 본능은 크게 생존과 번식입니다. 내가 살아야 되고, 그다음에 내 자손을 갖고 싶은 거죠. 그런데 생존에 몰입하다 보면 번식을 못 하게 되는 겁니다. (여력이 없는 거죠.) 그럼요. 절대적인 생존뿐만 아니라 이제 상대적인 의미의 생존도 들어갑니다. SNS만 봐도 그렇잖아요. 젊은 층들은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경쟁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 수도권과 정반대로 지방은 소멸될 위기입니다. 당장 지방 소멸을 막거나 늦출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글쎄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전략이 있을 수가 있을까 싶습니다. 지방 소멸이 왜 일어나는가를 살펴보면, 첫 번째로 젊은 분들이 아기를 낳지 않고 두 번째는 젊은 분들이 그 지역을 빠져나가고 있거든요. 역으로 보자면 젊은 분들이 빠져나가지 않고, 젊은 분들이 거기서 사시면서 자녀들을 출산하면 해결이 되겠죠.

수도권에 모든 게 몰려있지 않습니까. 꼭 교육하고 직장만 가지고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돼있습니다. 서울 한번 가보니 너무 많고 다양한 인프라가 갖춰져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것까지 생각하면 다시 지방으로 안 돌아가게 되죠.

젊은 층들을 지방에 남게 하기 위해서는 서울만큼은 아니더라도 서울에 준하는, 혹은 서울에 가까운 형태의 집중적인 거점을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대전, 부산, 대구 이렇게 큰 도시들이 그 주위에 있는 여러 거주 생활 도시들의 인프라 거점 역할을 해줄 필요는 있다고 봐요.

그런데 예를 들어 출산지원금 2000만원 주고 여기 정착을 시키겠다? 이건 굉장히 나이브한 생각입니다. 아이가 크면 마땅한 어린이집도 없고, 인프라가 구축돼있지 않으면 다 빠져나갈 수밖에 없죠. 그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 서로 뺏어 먹기 밖에 안되는 거예요. 정책으로 사람을 잡아두려 할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여기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어줘야 해요. 결국 한국에서는 주택, 고용, 그리고 교육이죠.

- 오늘도 중간중간 이야기가 나왔는데 고령화 문제는 어떻습니까. 초고령화 시대에 우리나라는 어느 정도로 대비됐는지, 또 어떤 부분을 보완하고 준비해야 할까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평가하실지 모르지만, 우리 정부가 초고령화에 대비를 잘한 면이 하나 있어요. 장기요양보험입니다. 사회적으로 굉장한 안전망이 설치된 거예요. 어느 나라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도 자랑할만합니다. 국민연금도 말이 많고 고쳐할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크게 나쁘진 않은 수준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정부의 노력과는 별개로 사회와 개인이 얼마나 준비됐나, 그건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노인들의 경제활동 참가율도 굉장히 높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지금 노인분들 중에 빈곤한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한편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 웬만큼 부를 가지신 분들도 노인분들입니다. 부의 양극화가 굉장히 크다는 이야깁니다.

국민연금 수령 나이를 늦추게 되면 노인분들이 생존할 수 있는 소득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럼 직장이 있어야 할 거고 정년을 늦춰야겠죠. 이게 또 어떻게 연결이 되냐면 ‘노인들이 일자리 그대로 차지한다’,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 어떻게 구하냐’는 식의 세대 갈등이 만들어집니다.

조심히 봐야 하는 게 노인분들이 떠나간 자리를 젊은 분들이 그대로 차지하지 않습니다. 회사에 연봉 3억원을 받는 전무님이 나갔다고 칩시다. 수량적으로 보면 연봉 5000만원을 받는 젊은 분이 6명 들어올 수 있겠죠. 그런데 회사가 그렇게 할까요? 아니죠. 한사람 쓰겠죠. 그것도 인턴으로요. 자꾸 세대갈등론이 빚어질 때 ‘나이 드신 분들이 직장을 안 나가기 때문에 자리가 없다’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굉장히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봅니다.

■ 김정석 한국인구학회장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학사 ▲미국 University of South Carolina-Columbia 사회학 석사 ▲미국 University of Michigan-Ann Arbor 사회학 박사 ▲동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구와사회협동연구소 소장 ▲한국인구학회 2024-2025 회장

파이낸셜투데이 채승혁 기자